일을 다시 시작한 후 전혀 시간이 나지 않아 방치됐던 블로그였는데 아이폰을 지른 후엔 간단히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미투에서 깔짝이느라 가끔씩 근황만 끄적이는 블로그가 되어버렸습니다-_-; 오늘은 오랜만에 총제적인 여유를 얻게되어 그간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보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시작은 3월 15일. 오후부터 우시면서 이상 증상을 보이시는 할아버지를 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3월 16일. 할아버지께서 의식을 잃으시고 응급실에 들어가신지 근 24시간만에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증상은 뇌졸증. 이번이 세 번째 맞으시는거라 어쩌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3월 20일 아침엔 불규칙적인 상태가 지속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지셨습니다. 거기서 나흘인가 닷세인가 계시다 상태가 안정화되어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지셨구요.
병원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요양원으로 옮겨지신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 땐 제 동생이 내려와서 저 대신 뒷치닥거리 할 때라-_-;
4월 9일 밤부터 제 생애 최악의 몸살에 걸려버렸습니다. 그 다음날까지 고생, 하지만 일은 하러 나갔다가 잔뜩 민폐만 끼치고 두 시간 일찍 집에 왔습니다. 눈 앞이 핑핑 돌고 손이 떨려서 칼질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군요.
4월 16일. 제가 쉬는 날이라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습니다. 의식은 없으시지만 어쨌든 언제까지 이 상태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그리고 4월 17일 새벽 3시 40분, 돌아가셨습니다. 정작 집으로 연락이 온건 5시 넘어서. 시신을 봤을 때는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원래 의식없이 누워만 계시는 생활을 한달가량 하셨으니까요. 처음으로 돌아가셨다는걸 느꼈을 땐 장의사가 와서 시신 옮겨갈 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나오는 시체 담는 슬리핑 백 같은 것에 쌓여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봤을 때였습니다. 공교롭게 그 날도 금요일이었고 차라리 바쁘게 지내는게 좋을거 같아서 그냥 일 했습니다.
4월 19일엔 오이 썰다 제 엄지 손가락도 같이 썰어버렸습니다. 피가 줄줄 흐르는걸 보고 다들 식겁해서 휴지들고 생난리를 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중에 최악이었던건 담배 응급 처치-_-; 이런 방법이 있다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ㅁ이 상처에 담뱃가루를 뿌리고 밴드를 붙이는 순간, 감당 못할 고통엔 비명도 못 지른다는걸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어찌됐든 피는 대충 멎었습니다. 상처는 지금까지 아물지 않고 있지만요.
장례식은 엊그제인 4월 22일.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 1주일 중 마지막으로 더운 날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대부분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 지인분들이라는게 좀 그렇지만 뭐 어쨌든 상관없겠죠. 서로 겹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영정 사진을 제가 들었는데 이런건 해본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할머니께서 적적하실까봐 아이팟 셔플을 구입했습니다.
4월 23일. 하루만에 아이팟 셔플이 도착했습니다-_-; 무료배송은 흔히 5-10일쯤 걸리는데 각인을 세기지 않아서 그랬는지 거의 반나절만에 도착한 샘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다시 오클랜드로 올라갔습니다. 고모랑 사촌동생도 다 돌아갔습니다. 집엔 저랑 할머니, 개떵이 뿐입니다.
이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나 싶지만
아직 할머니 암 수술이 5월 5일에 잡혀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시작은 3월 15일. 오후부터 우시면서 이상 증상을 보이시는 할아버지를 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3월 16일. 할아버지께서 의식을 잃으시고 응급실에 들어가신지 근 24시간만에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증상은 뇌졸증. 이번이 세 번째 맞으시는거라 어쩌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3월 20일 아침엔 불규칙적인 상태가 지속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지셨습니다. 거기서 나흘인가 닷세인가 계시다 상태가 안정화되어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지셨구요.
병원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요양원으로 옮겨지신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 땐 제 동생이 내려와서 저 대신 뒷치닥거리 할 때라-_-;
4월 9일 밤부터 제 생애 최악의 몸살에 걸려버렸습니다. 그 다음날까지 고생, 하지만 일은 하러 나갔다가 잔뜩 민폐만 끼치고 두 시간 일찍 집에 왔습니다. 눈 앞이 핑핑 돌고 손이 떨려서 칼질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군요.
4월 16일. 제가 쉬는 날이라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습니다. 의식은 없으시지만 어쨌든 언제까지 이 상태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그리고 4월 17일 새벽 3시 40분, 돌아가셨습니다. 정작 집으로 연락이 온건 5시 넘어서. 시신을 봤을 때는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원래 의식없이 누워만 계시는 생활을 한달가량 하셨으니까요. 처음으로 돌아가셨다는걸 느꼈을 땐 장의사가 와서 시신 옮겨갈 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나오는 시체 담는 슬리핑 백 같은 것에 쌓여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봤을 때였습니다. 공교롭게 그 날도 금요일이었고 차라리 바쁘게 지내는게 좋을거 같아서 그냥 일 했습니다.
4월 19일엔 오이 썰다 제 엄지 손가락도 같이 썰어버렸습니다. 피가 줄줄 흐르는걸 보고 다들 식겁해서 휴지들고 생난리를 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중에 최악이었던건 담배 응급 처치-_-; 이런 방법이 있다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ㅁ이 상처에 담뱃가루를 뿌리고 밴드를 붙이는 순간, 감당 못할 고통엔 비명도 못 지른다는걸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어찌됐든 피는 대충 멎었습니다. 상처는 지금까지 아물지 않고 있지만요.
장례식은 엊그제인 4월 22일.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 1주일 중 마지막으로 더운 날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대부분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 지인분들이라는게 좀 그렇지만 뭐 어쨌든 상관없겠죠. 서로 겹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영정 사진을 제가 들었는데 이런건 해본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할머니께서 적적하실까봐 아이팟 셔플을 구입했습니다.
4월 23일. 하루만에 아이팟 셔플이 도착했습니다-_-; 무료배송은 흔히 5-10일쯤 걸리는데 각인을 세기지 않아서 그랬는지 거의 반나절만에 도착한 샘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다시 오클랜드로 올라갔습니다. 고모랑 사촌동생도 다 돌아갔습니다. 집엔 저랑 할머니, 개떵이 뿐입니다.
이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나 싶지만
아직 할머니 암 수술이 5월 5일에 잡혀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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